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8 베이징 올림픽 (문단 편집) == [[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|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성적]] == [include(틀:2008 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 금메달리스트)] 한국은 이 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11개 동 8개로 역대 최다 금메달을 따내어 총 '''7위'''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. [[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|직후의 동계올림픽]], [[2012 런던 올림픽|다음 하계 올림픽]]과 함께 명실상부한 '''한국 스포츠의 최전성기'''를 상징하는 올림픽이다. 박태환의 수영 금메달, 장미란의 역도 금메달, 이용대/이효정의 배드민턴 금메달, 야구 금메달 등 여러 종목에서 다신 나오기 힘든 기적같은 금메달들이 쏟아져 나왔다. 참고로 당시 여자 역도에서 [[장미란]]이 금메달, 임정화가 4위를 차지했는데 그 당시 은메달을 차지했던 터키의 시벨 오스칸의 소변에서 [[도핑|금지약물 양성]]이 나와 은메달이 박탈당하면서 당시 동메달을 딴 선수는 은메달로 승격되어 4위였던 임정화 역시 8년이 지난 후에 3위로 올라섬으로써 늦게나마 동메달을 받게되었으며 또다시 그 메달을 땄던 중국 선수마저 메달이 박탈됨에 따라 은메달을 따게 되었다.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 메달이 총 32개로 하나가 더 늘었으며 순위는 전과 동일하다. 남자 단체 종목으로는 사상 최초로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왔다. 자세한 사항은 [[2008 베이징 올림픽/야구]] 문서 참조. 그 동안 메달이 없었던 [[제주특별자치도]] 역시 [[강민호|지역 출신 올림픽 메달리스트]]를 배출했다. 그리고 [[한국]]에서는 물론 [[아시아]]에서도 메달이 나오기 힘든 수영 [[자유형(수영)|자유형]] 종목에서 [[박태환]]이 만 18세의 나이로 '''아시아 신기록'''을 경신하며 수영 불모지인 한국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[[기적#s-2]]을 연출했다. 당시 박태환이 따낸 금메달은 무려 72년만에 아시아에서 나온 자유형 종목 금메달이었기에 매우 의미가 있는 메달이었다고 할 수 있다. 또한 [[장미란]]은 상대 선수들과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금메달과 함께 '''세계 신기록'''을 경신했다. 같은 역도에서 [[사재혁]]이 금메달을 수상했고, 배드민턴에선 [[이용대]]와 [[이효정(배드민턴)|이효정]]이, 유도에선 [[최민호]]가 금메달을 수상하며 국민 영웅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. [[진종오]]는 자신의 첫번째 금메달을 따냈고 양궁에서 금메달 2개, 태권도에서 4개, 여기에 야구[* 이 메달로 [[강민호]]는 제주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따게 되었다.]까지 더해 총 '''13개'''의 금메달이 나왔다. 한국은 메달 종합순위 7위를 차지해서 [[2000 시드니 올림픽|시드니]]와 [[2004 아테네 올림픽|아테네]]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. 아무래도 이웃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다 보니 현지적응 부분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했기 때문에 호성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겠다.[* 다만, 일본에서 열린 [[2020 도쿄 올림픽]]과 중국이 두 번째로 개최한 [[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]]은 경우 [[코로나19]] 변수나 편파판정으로 베이징 올림픽 때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.] 그런데 선수들의 귀국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. 모든 경기가 끝나고 더 이상 중국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는 선수들의 귀국을 체육회가 막아버렸다. 이를 두고 "정권의 홍보를 위하여 선수들의 단체 귀국 차량 퍼레이드에 동원하기 위하여 막은 거 아니냐"는 비난이 속출하자[* 선수 몇몇은 '한국에 가서 부모님 보고 싶은데'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. 결국 이런 반응을 보이던 [[박태환]]은 4년 뒤 [[2012 런던 올림픽]]에선 아예 부모님이 런던에 머물렀다.] "선수들의 상업적 이용을 막기 위해서"라는 변명을 했고, 결국 차량 퍼레이드가 아닌 선수들의 단체 귀국 걷기 퍼레이드를 보였으나 몇몇 선수들은 불쾌한 얼굴을 보이며 걷기도 했다.[* 여자 태권도 67kg급 금메달리스트 황경선은 당시 8강전에서 왼쪽 무릎 연골 파열, 전방 내측 십자 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급히 귀국해야하는 상황이었다. 하지만 기어코 윗선의 입김 때문에 선수단 전체가 귀국할 때 같이 귀국해야 했으며, 퍼레이드에서도 어쩔 수 없이 절뚝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.] 중계도 당연히 되지 않았고, [[중앙일보]] 계열인 일간스포츠는 1면으로 "시대를 역행한 국제적 망신거리"라고 비판했다.[* 여담으로 최후의 올림픽 대표 차량 퍼레이드는 [[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]] 때였다. 당시 [[노태우]] 정권이었다는 점, [[손기정]] 이후 56년 만에 [[황영조]]의 [[마라톤]] 금메달 획득 등 호성적을 냈다는 점, 그리고 당시 차량 퍼레이드를 할 때 오늘날에 비해 차량 통제가 비교적 쉬웠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.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editNo=15&printCount=1&publishDate=1992-08-11&officeId=00032&pageNo=1&printNo=14492&publishType=00010&articleId=1992081100329101001|#]]] '''그리고 이런 계획은 [[2012 런던 올림픽]] 때에도 쭉 써먹으려다가''' 호된 비난을 받고 강제적인 면을 없애 몇몇 선수가 한국에 먼저 왔는데, ([[양학선]] 같은 경우) 그래도 말이 많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